본문 바로가기
영화

[영화/화양연화] 화려한 홍콩의 그 시절, 미장센의 극치 (스포O)

by 심표맨 2022. 3. 27.
728x90
반응형
출처 - 네이버 영화
출처 - 네이버 영화


코로나19로 가장 많이 변한 것 중 하나는 영화관 풍경일 듯합니다.
영화 보며 먹던 팝콘이 그리워진 사람들을 위한 팝콘 배달 서비스가 생겼고, 빠르게 변하던 박스오피스 순위도 많이 더뎌졌습니다.
더불어 레트로 열풍으로 2030 세대에겐 때아닌 재개봉 영화 붐이 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홍콩영화가 주목받고 있는데, 오래된 홍콩영화 속 굿즈까지 만들어 파는 영화관이 생길 정도입니다.
홍콩은 일국양제 때문에 특유의 헤어짐의 정서가 돋보이는 영화가 많은데, 이번엔 대가 왕가위 감독의 미장센의 극치를 보여주는 영화를 소개할까 합니다.
1962년 홍콩 상하이 이주민이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만난 수 리첸(장만옥)과 초 모안(양조위)의 외로운 삶과 애틋한 사랑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1. 줄거리

두 쌍의 부부가 같은 날, 이사 올 아파트를 방문하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하필 이사조차 같은 날에 하게 됩니다.
잘못 온 짐을 돌려주며 인사를 나누고 통성명을 하게 된 수 리첸과 초 모안은 스칠 듯 스치지 않는 좁은 아파트 복도를 오가며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수 리첸은 무역회사 대표의 비서 일을 하고 초 모안은 신문사에서 신문 편집을 맡고 있습니다.
일본과 무역을 하는 수 리첸의 남편은 잦은 출장으로 항상 바빠 수 리첸은 늘 혼자 지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식사를 하려고 아내의 직장에 방문한 초 모안은 아내가 일찍 퇴근했다며 꺼림칙한 소리를 듣게 됩니다.
아내가 사실 집에도 없다는 걸 알고 있던 초 모안은 거리를 방황합니다.
수 리첸도 이상한 낌새에 옆집을 방문하는데, 그곳에 자신의 남편이 있다는 심증이 굳어집니다.
배우자의 외도를 의식하게 된 두 사람은 각자 착잡한 마음입니다.
그러다 수 리첸과 초 모안은 다시 좁은 골목에서 마주칩니다.
우연히 서로의 배우자의 근황에 대해 대화하던 두 사람의 의심은 커져가고, 이야기할수록 점점 확신을 갖게 됩니다.
인정하긴 싫지만, 서로 아픈 고민을 나누며 그 두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이른바 ‘연기’를 시작합니다.
함께 식사하고 시간을 보낼수록 동지애는 사랑으로 변하게 됩니다.
서로의 시선이 서로를 바라보고 어디서부터 이렇게 된 건지 모를 만큼 감정은 깊어집니다.
함께 있을 명분이 필요했던 초 모안은 새로운 일을 만듭니다.
바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겁니다.
두 사람에겐 배우자들의 외도가 아닌 또 다른 주제가 새롭게 생긴 셈입니다.
그렇게 함께 소설을 구상하던 두 사람은 주변 이웃 눈을 피하려다 초 모안의 방에서 꼼짝없이 하룻밤을 보내게 됩니다.
불편한 동침이 이어지는데, 초 모안은 소설을 핑계로 집이 아닌 특별한 장소를 제안합니다.
수 리첸은 이대로 가다간 남편과 같은 불륜을 저지르게 될까 봐 망설입니다.
이 두 사람은 늘 자신들은 다르다며, 서로에 대한 감정을 애써 무시하며 지내왔기에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돌아 돌아가지도 못하는 상황만이 계속됩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걸려온 초 모안의 전화에 호텔로 가게 된 수 리첸은 보고 싶은 마음과 이성적인 판단 사이에 갈등하다 결국 약속한 방 앞에 섭니다.
결국 그 문턱을 넘어서지 못한 채 인사하며 발걸음을 돌립니다.
하지만 둘은 여전히 함께 소설 작업을 핑계로 한 즐거운 시간을 만끽합니다.
이웃 사정을 훤히 꿰뚫을 만큼 좁았던 아파트였기에 이 둘의 구설수는 수 리첸의 귀에까지 들어갑니다.
피할 수 없는 마음처럼 세차게 비가 쏟아지던 날, 초 모안은 싱가포르 지사로 이직하겠다는 말을 꺼냅니다.
그녀를 위해, 그녀를 지켜주기 위해 떠날 생각이었던 겁니다.
언제나 다른 이유를 만들어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처럼 두 사람의 이별 또한 본심을 숨긴 채 연기 연습이라는 명분을 내세웁니다.
결국 울음을 터뜨리는 수 리첸을 초 모안은 애써 위로합니다.
사실 함께 하길 바랐던 두 사람의 진심은 결국 비밀스럽게 가슴 한 켠에 숨겨놓고 시간이 흐릅니다.
그 뒤로도 두 사람은 서로의 흔적을 찾아 몇 번을 마주치고 스치며 지나칩니다.
좀처럼 이어지지 못한 채 인연의 끈은 그렇게 엇갈려 영화는 끝이 납니다.

2. 감상 포인트

두 사람의 아름다운 한 때를 뜻하는 화양연화는 꽃이 펴 가장 찬란할 때를 가리킵니다.
답답한 애정전선만큼 그걸 비추는 카메라 앵글 또한 두 사람을 가두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문 틈에서 지켜보는 것 같을 때도 있고 거울로 비춘 모습을 찍을 때도 있는데, 아마 자신들은 인정하지 않은 두 사람의 감정을 비춘 듯한 느낌을 주려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헤어 나올 수 없는 감정에 빠져 이루어질 수 없어 더욱 애틋한 사랑이라지만, 모두가 기피하는 불륜이라는 감정을 아름답게 묘사함으로써 왕가위 감독에겐 큰 도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서로에게 진심을 드러내지 않고 그 흔한 입맞춤 하나 없이 둘의 사랑은 끝이 나는데, 그게 오히려 더 강렬한 자극으로 와닿았습니다.
죄책감과 이성 사이 미묘한 감정선은 무언가 일어날 것만 같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긴장을 불러일으킵니다.
화려한 홍콩의 그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영화 속 미장센은 말 그대로 예술 그 차제입니다.
한 컷, 한 컷이 사진으로 그림으로 남겨도 좋을 만큼의 아름다웠습니다.
특히나 장만옥 배우가 입고 나오는 전통의상인 치파오는 입는 사람에게 찰싹 가서 붙었다고 표현할 만큼 어쩜 저렇게 잘 어울리는지, 보는 내내 감탄했습니다.
실제로 장만옥 배우는 21벌의 치파오를 입었다고 하는데, 상황과 감정을 옷으로 전달했다고 합니다.
의상 자체도 영화 속 하나의 미장센이었던 겁니다.
초록색이 불륜을 상징해서 영화 초반에 초록색 옷을 많이 입고 나왔다고 전해집니다.
호텔로 갈 때가 두 사람의 감정의 극이 부딪히는 절정인데, 그때의 장만옥 배우는 사랑을 상징하는 빨간색의 치파오과 겉에는 순수를 상징하는 흰색 코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결백하나 속마음은 붉게 타오르는 수 리첸의 충돌하는 마음 그 자체였던 겁니다.
그리고 그 둘이 헤어지고부터는 회색과 보라색 등 슬픔을 상징하는 옷으로 공허하고 쓸쓸한 정서를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숨겨진 의미를 찾으며 두 사람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이었습니다.
또한 이 영화는 홍콩 반환을 두고 공허한 마음을 표현한 영화로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이 헤어지며 ‘화려한 시절은 지나가고 이제 거기는 아무도 없다’라는 문구가 나옵니다.
어찌 보면 수 리첸과 초 모안의 이야기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2000년에 개봉한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1국2제도가 유지되는 초반 그 쓸쓸한 정서를 표현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화려했던 두 사람의 사랑은 홍콩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사랑과 죄책감을 두고 행동하지 못했던 것 또한 왕가위 감독이 홍콩을 두고 가진 마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초 모안이 수 리첸을 부른 호텔 방 호수가 2046호였는데, 이 숫자는 1국2제도 유지 기간인 50년을 끝낸 연도였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왕가위 감독이 홍콩에게 바치는 사랑 영화가 아니었나 싶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3. 총평

그 당신 아카데미 경쟁부문 초청작으로 초대받은 뒤, 시간이 빠듯해 결말도 흐름도 조금씩 진행하는 와중에 달라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보는 내내 두 사람의 감정이 왜 저렇게까지 애틋한 것인지 공감하며 따라가지 못한 부분이 커서 아쉽습니다.
설득력이 조금 부족했고, 결말 또한 조금 허무했습니다.
그럼에도 왕가위 감독의 화려한 색채와 특유의 쓸쓸한 감성 그리고 장만옥 배우의 리즈시절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 번쯤 추천하고 싶습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