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대선이 끝나고 6월 또 다른 선거가 있습니다.
빨강과 파랑, 진보와 보수가 나뉘어 우리나라 전체가 치열하게 고민하는 올해가 아닌가 싶습니다.
색을 넘어 개인과 개인이 공존하는 길은 어떻게 해야 건전할 것인가의 고민으로 찾아본 영화가 있습니다.
성향이 완전 반대인 두 교황의 갈등과 화합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베네딕토 16세는 영화 한니발에서 섬뜩한 사이코패스를 연기한 앤서니 홉킨스가 맡았고, 100%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역엔 조너선 프라이스가 나옵니다.
1. 줄거리
영화는 2005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거리에서 시작됩니다.
배르골리오 추기경의 설교가 한창이던 이곳에선 수많은 인파와도 격 없이 소통하는 추기경의 성격을 보여줍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비보를 듣게 되는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서거했다는 소식입니다.
그 후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 새 교황 선출을 위해 모여든 추기경들과 역사적 현장에 모여든 신자들로 북적이는 모습입니다.
유력한 교황 후보인 보수파 요제프 라칭거는 참석자의 얼굴을 익히는 중입니다.
그러다 아바의 댄싱퀸을 흥얼거리고 있던 베르골리오 신부를 화장실에서 우연히 마주치지만, 사실 비슷한 점이 하나도 없는 두 사람입니다.
경건한 의식 아래 진행되는 콘클라베, 예배당 안에서 진행된 투표 결과를 알리는 깃대엔 흰색 깃발이 걸립니다.
교황의 장신구를 걸고 나오는 주인공은 바로 요제프 라칭거,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탄생 순간입니다.
그를 지지하는 신자들도 있지만, 반감을 드러내는 자들도 있습니다.
7년 후, 아르헨티나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는 베르골리오는 바티칸으로부터 기다리던 편지를 받습니다.
알고 보니 기다리던 답장이 아니라 교황이 보낸 초대 편지였습니다.
그 당시 바티칸에선 교회의 기밀문서가 유출되고 베네틱토 16세의 비서가 저지른 성 추문 스캔들까지, 이래저래 교황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른 상황입니다.
한편 베르골리오는 여름 별장에서 지내는 베네딕토 16세를 만나러 왔습니다.
사실 베르골리오가 기다리던 편지는 교황에게 보낸 자신의 은퇴와 관련된 답이었습니다.
하지만 베네딕토 16세는 사직을 허락하면 교회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일 거라며, 교회가 처한 상황에선 쉽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교회가 실패했다고 보냐며, 베르골리오의 생각을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합니다.
베르골리오는 교회 또한 시대의 요구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논쟁은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문제로 이어집니다.
베르골리오는 교회가 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 또한 신랄하게 비판해버립니다.
베네딕토 16세는 방금 들은 그 어떤 것에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등 둘의 멀고 먼 간극을 보여줍니다.
베르골리오는 사실 과거엔 지금의 교황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고 고백하며, 지금은 달라졌을 뿐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날 밤, 축구경기를 보고 있던 자신을 찾아온 베네딕토 16세에게 베르골리오는 기다렸다는 듯이 은퇴 서류를 들이밉니다.
하지만 교황은 손사래 치며 받지 않습니다.
둘은 잠시 무거운 이야기를 내려놓고 성직자가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젊은 베르골리오는 어릴 때부터 성직자의 꿈을 갖고 있었지만, 살아가며 아무런 계시도 받지 못하자 포기하고 연인에게 청혼하려 합니다.
꽃을 사서 가는 길에 문득 어느 성당으로 들어가 고해성사를 하게 되는데, 그 길로 성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베르골리오의 과거 얘기를 시작으로 둘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과 TV 프로그램 등 서로의 취향을 친구처럼 나눕니다.
그러던 와중에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의 오랜 외로움의 대해 고백하며, 마치 위로를 얻은 듯한 표정을 짓습니다.
다음날, 성 추문 스캔들을 수습하기 위해 급하게 로마로 향하는 베네딕토 16세와 베르골리오는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다시 예배당에서 만납니다.
베네딕토 16세는 교회와 교회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며, 사임 의사를 밝힙니다.
지난밤, 은퇴 결심을 한 건 정작 교황 본인이었던 겁니다.
간밤에 대화에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적임자로 베르골리오를 지목합니다.
그 말에 자신은 자격이 없다며, 지난날의 과오에 대해 먼저 고백합니다.
1976년 아르헨티나 군사독재시설, 신부와 수녀마저 살해당하던 그 잔인한 시대에 베르골리오는 사실 군사정부에 타협했던 것입니다.
불온서적을 없애고 동료 신부들을 찾아가 회유도 해봤지만, 결국 신부들은 납치되고 모두를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독재정부가 끝난 후 추방당한 베르골리오는 끝없는 기도와 자아성찰을 반복하고, 결국 형제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받은 후에야 성직자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겁니다.
모두 들은 베네딕토 16세는 우리 모두 죄인이라며, 자신의 고해성사를 베르골리오에게 부탁합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과 교회의 죄까지 모두 고백하는데, 베르골리오의 놀란 표정 뒤로 모든 게 음소거 처리됩니다.
충격받은 베르골리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이 서있는 그 자리에서 성찰해야 제대로 극복할 수 있다며 다시 설득합니다.
그런 베르골리오에게 베네딕토 16세는 성직자로서의 또 다른 고민을 고백합니다.
한동안 자신의 기도에 신의 응답이 들려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지난 이틀 동안 신의 계시를 다시 듣게 됐는데, 그건 바로 베르골리오의 음성이라고 설명합니다.
용서의 기도를 마친 베르골리오는 그제서야 진실은 중요해도 사랑이 없는 진실은 견딜 수 없다고 말하며 교황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다시 작별하는 두 사람, 아르헨티나의 탱고를 추며 아주 어색하고도 흐뭇하게 헤어집니다.
곧바로 사임의 뜻을 발표하는 베네딕토 16세, 또다시 열린 콘클라베에서는 베르골리오가 새 교황으로 선출됩니다.
당연시 여겨졌던 화려한 장신구나 의식 없이 단촐한 차림으로 대성당 발코니에 오른 베르골리오, 현재의 프란치스코 교황 취임식입니다.
새 교황이 된 그는 전 세계를 돌며 말씀을 설파하고 두 사람은 월드컵 결승전까지 함께 보는 친구의 모습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2. 감상 포인트
신으로부터 주어진 권한을 아름다운 권력으로 나누는 고해와 용서에 관한 영화입니다.
보수와 진보가 진솔한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실화지만 실화보다 따뜻하게 그려졌습니다.
실제로 베네딕토 16세와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세 번 정도의 사적 만남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사실을 기반한 상상력으로 쓰인 이야기입니다.
현대에 벌어진 실제 사건이 소재로 쓰여진 터라 실제 자료영상과 그와 비슷하게 촬영된 장면을 아주 절묘하고도 생생하게 섞어놨습니다.
어떤 게 진짜인지 슬쩍 보면 헷갈릴 정도인데, 그만큼 현실감과 몰입감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교황이라는 존재가 사실 촬영이나 협조가 어려웠던 점을 감안하면 지나친 억측은 지양해야 할 부분 같습니다.
이런 문제 때문인지 베네딕토 16세가 고해성사를 하는 부분을 음소거로 처리했는데, 사실 고해성사는 철저한 비밀이 원칙인 데다 아무리 영화적 상상이라도 까딱했다간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만한 부분이라 아마 그렇게 연출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영화의 감독인 메르난도 메이렐레스의 시선도 한껏 반영됐다고 봅니다.
실제로 빈민층에 관심이 많은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개인적인 존경심을 드러냈는데, 영화 속에서도 그 시선이 묻어납니다.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과거의 죄를 고백할 때, 약간의 변호가 섞여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프란치스코 교황을 연기한 조너선 프라이스의 싱크로율은 완벽에 가까웠습니다.
또한 두 교황이 토론하는 모습이 많은데, 하나도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총칼이 없음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들었습니다.
두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으로 끌어간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첫 만남부터 극단에서 대립하는데, 싸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사실 정통 보수를 자처하던 베네딕토 16세가 베르골리오를 불러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로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종교가 다음 세대와 함께 나아갈 길을 토론한다는 우아한 상상력이 좋았습니다.
사제복을 입고 있는 두 사람이 피자와 환타를 먹는 장면 등 성직자라고 해도 사실은 귀여운 할아버지들의 우정을 보여준 것 또한 반전으로 귀여웠습니다.
결국엔 교황이라는 권력도 신 아래 모두 같은 인간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준 게 아닐까 싶습니다.
3. 총평
이 영화를 통해 진보와 보수의 간극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건강한 진보와 보수의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닐까 보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게 했습니다.
여기서 보여준 대로 개혁의 편에 선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교적 이념을 떠나 전 세계인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유일 교회의 가톨릭이 직면한 위기를 현명하게 풀어냈다고 평가 받기도 합니다.
전통이나 보수가 오래 살아남기 위해선 베네딕토 16세처럼 시대를 보는 눈과 물러설 때를 알고 승복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진보 또한 옳고 그름을 넘어 한 발, 한 발 제대로 내딛기 위해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그 간의 잘못을 지우는 게 아니라 인정하는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서로 소통하면 더 나은 사회를 향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특히나 요즘 사회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누군가를 무조건 배척하는 경향이 더 두드러졌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통해 의미 있는 경청이 얼마나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가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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