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코로나19 시국에서 실업률은 사상 최대치를 찍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도 정규직보다 7배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삶의 수단을 잃고 있다고 합니다.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우리의 하루하루, 어떤 일이든 밥벌이는 숭고합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린 영화는 성실히 일하지만, 더욱 수렁에 빠지는 택배기사 리키의 안타까운 현실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영화계 블루칼라의 시인이라고도 불리는 켄 로치 감독의 연출로, 사회 안전망을 향한 물음표를 던집니다.
리키 터너 역에는 크리스 히킨과 그의 아내인 에비 터너 역의 데비 허니 우드가 출연했습니다.
의도한 건진 모르겠지만, 두 배우 모두 다른 직업에 종사하다 배우가 됐다고 합니다.
제목처럼 리키의 비참한 현실은 리키의 탓이 아니라는 걸 관찰자의 시선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1. 줄거리
리키는 건설사에서 일하다 실직한 인물로 나옵니다.
두 자녀를 키우고 있는 가장으로, 돈벌이가 절실합니다.
한 택배회사로 찾아가 면접을 보게 됩니다.
기본임금 없이 배송 기한만 지킨다면 일한 만큼 벌어갈 수 있다는 꿈같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희망에 찬 리키는 목돈을 위해 아내가 타고 다니는 차까지 팔면서 택배차량을 사게 되고 바로 일을 시작합니다.
첫날부터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동료에게 소변 볼 시간도 없다면서 큰 페트병을 받기도 합니다.
여기서부터 이들에게 벌어지는 어려운 현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차 딱지가 떼이는 상황에서도 고군분투, 고객과 농담 따먹기를 하기도 하고 유치한 말다툼이 오고 가기도 합니다.
한편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아내의 하루도 쉽진 않습니다.
집에 있는 아이들은 부모가 없는 일상이 익숙합니다.
어느 날, 사고로 일을 못하게 된 택배기사 중 한 명의 노선이 리키와 바뀌게 되고 전보다 바빠집니다.
와중에 첫 째 아들과의 문제가 자꾸 벌어집니다.
불법 그래피티를 친구들과 그리고 다니는데, 심지어 학교도 무단결석하고 맙니다.
리키는 아들의 학교 문제로 교장과 상담하기로 했지만, 바쁜 일 때문에 약속시간에 늦어버립니다.
결국 아들은 정학을 받게 되고 참지 못한 리키는 홧김에 집에서 스트레스를 풀어버립니다.
지친 아내도 함께 목소리가 높아지고 결국 싸우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엔 아들의 도둑질로 경찰서에 붙잡힌 상황이 벌어집니다.
보호자가 없으면 범죄기록이 남기 때문에 리키는 일을 못하는 대신 벌금을 내고 경찰서로 향합니다.
경찰관에게 훈계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반성은 커녕 사과조차 하지 않는 아들.
결국 화를 참지 못한 리키는 아들과 또 큰소리를 내게 되고,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야속함에 아들은 집을 나가버립니다.
다음날, 리키의 택배차 열쇠까지 없어지자 아들을 의심하고 돌아온 아들에게 결국 손찌검까지 하게 됩니다.
둘째 딸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리키에게 모든 걸 털어놓습니다.
사실 예전의 아빠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에 열쇠를 숨겼다고 고백합니다.
그 일로 리키는 아들의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고 초심을 다잡습니다.
그러나 하루 14시간의 지옥 노동에 지친 리키는 졸음운전을 하기 일쑤입니다.
엎친 데 덮쳐 갑자기 들이닥친 날강도에게 물건도 뺏기고 폭행까지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엔 걱정 대신 벌금과 대타를 구하란 얘기가 들려오게 되고,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는 사람이 많은 병원에서 욕까지 하며 폭발해버립니다.
리키는 안타까운 상황만 속에 다친 몸을 이끌고 다시 차에 올라탑니다.
온 가족이 뛰쳐나와 말리지만 결국 도망가듯 일터로 나갑니다.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눈물을 흘리며 운전하는 리키의 마지막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2. 감상 포인트
노동 계층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가진 켄 로치 감독의 영화엔 무겁지만, 지루하지 않은 게 특징입니다.
울컥울컥 하게 만드는 몇 가지 부분이 있는데, 남의 일이 아닌 우리가 사는 일에 대한 이야기 같이 느껴져 더 와닿습니다.
희망과 의욕이 넘치던 리키 가족에게 닥친 시련은 그가 게을러서도 아니고 아들이 나빠서도 아닙니다.
리키는 책임 강도 강하고 성실하면서 가족을 무척 사랑합니다.
아내도 아이들을 보듬어주고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평범하고도 훌륭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겠다는 소박한 꿈마저 힘들게 만드는 현실.
영화에서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그 꿈의 결말로써 관객들에게 노력에 응답하지 않는 사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를 보여줍니다.
택배기사들은 물류회사와의 고용계약이 아닌 대리점과의 사업자 계약을 맺습니다.
우리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우리와 함께 가는 거라고 말합니다. 마치 노동자를 사장님으로 만들어 대등한 협업관계라도 된 듯이 착각하게 만듭니다.
사실 이건 근로자의 권리와 배려는 무시된 채 연차 월차는 물론이고 업무상 문제나 사고에 대해선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겁니다.
최근 이런 고용형태를 ‘긱 이코노미(Gig Economy)’라고 하는데, 많은 모순점을 주인공 가족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긱 이코노미는 단기간 임시적 고용관계로, 쉽게 말하면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만 일하라는 듣기엔 아주 매력적입니다만, 고용안정은 개나 주고 노동자를 착취하겠다는 기만적인 형태입니다.
실제 자영업자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할당된 물건만 주어진 시간 내에 배달하면 되는 건데, 영화에선 리키가 자신의 딸과 함께 다니며 택배를 나르는 일에 대해선 제재합니다.
최소한의 자율성도 없으면서 허울만 있는 개인사업자의 꼴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책임만 전가하는 비합리적인 시스템을 꼬집은 부분입니다.
우리나라의 택배 현실과도 비슷합니다.
노동계약이 아니라서 법적 보호에 배제돼 살인적인 근로시간과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에 당당하게 소리칠 수 없는 겁니다.
택배법 개정으로 많이 바뀌긴 했지만, 최근 파업 등 물류대란 사태를 보면 아직 실효성이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택배 종사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리키가 처한 현실 속에서 효율보다 사람이 먼저다 라는 대원칙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계기가 됐습니다.
3. 총평
리키의 답답한 현실에 화가 나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절대로 판단에 대한 강요를 하지 않습니다.
참견하지 않고 선동하지 않고 천천히 보여줍니다.
이 영화가 가진 메시지를 통해서 가난한 자를 비난하거나 탓하지 않고 진짜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지 깨닫고 천천히 움직인다면 모두가 바뀌진 않을지라도 고통받는 사람은 줄어들지 않을까요.
불편해도 꼭 알아야 할 우리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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