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갈등과 지역갈등 거기에 덧붙여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성별 갈등’
최근 20대 대선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여성가족부 존폐 여부 또한 같은 맥락의 이야기입니다.
이 문제로 시끄러웠던 한 영화를 이번에 소개할까 합니다.
페미니스트 책이라고 알려진 ‘82년생 김지영’ 소설을 원작으로 했습니다.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아내 그리고 누군가의 엄마로 사는 1982년생 김지영이 진짜 자기 인생을 찾아가는 내용입니다.
지영 역의 정유미 배우와 남편 대현 역의 공유 배우가 출연했습니다.
1. 줄거리
지영의 유년시절은 남아선호 사상이 깊게 벤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지붕 밖으로 여자 소리가 나면 안 된다는 둥 여자애는 자고로 조신해야 한다는 둥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랐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소리입니다.
직장에서도 번번이 승진 문턱에서 미끄러지는데, 단지 결혼과 육아를 전담할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 특별할 것 없이 불합리한 직장생활을 지나 어느새 한 아이의 엄마이자 주부가 된 지영.
남편 대현은 종종 다른 사람이 되는 아내가 걱정입니다.
지방에 있는 시댁에 명절을 치르러 내려온 지영은 시어머니와 함께 음식 차리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이제 친정으로 떠나려는 그때, 시누이 가족들이 찾아오게 되고 시어머니는 지영에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과일과 수정과를 내오라고 주문합니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지영은 시댁 식구들 모두 있는 앞에서 자신의 엄마로 빙의합니다.
“사부인, 제 딸도 귀해요.”
대현은 허겁지겁 짐을 챙겨 나오고, 지영은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극도의 스트레스가 쌓이면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터져 나오는 그녀의 진심.
매일 그런 지영을 자극하는 일들이 주변에서 자꾸 일어납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잠깐의 산책을 나온 지영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모진 말을 듣게 됩니다.
“상팔자, 부럽다, 나도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놀고 싶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듣는 가시 돋친 말.
지영은 그저 고개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이든 새로 시작하고픈 마음으로 조급해진 지영은 집 앞 빵집 아르바이트라도 하겠다며 남편에게 얘기합니다.
아내 문제로 정신과 상담까지 생각하고 있던 대현의 걱정되는 마음이 이윽고 큰 소리가 되어 튀어나오게 됩니다.
그러자 지영은 또다시 대현의 옛 선배로 빙의돼 버립니다.
대현은 심각해진 아내의 상태를 자신의 어머니에게 전하지만, 고운 시선일 수 없는 시어머니.
지영의 엄마 또한 남자 형제들 뒷바라지하느라 꿈을 포기하며 살아온 인물입니다.
취업이 안 된다는 지영의 볼멘소리에 지영의 아빠는 시집이나 가라며 윽박지르고, 앞에서 듣던 엄마는 시대 뒤떨어지는 말이라며 기를 살려주기도 합니다.
아마 엄마는 자신과 같은 인생을 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던 중 지영은 예전 직장선배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 되고 기뻐합니다.
대현은 그런 지영의 모습을 보고 차마 말릴 수 없고, 자신이 육아휴직을 내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시어머니는 축하한다는 말 대신 남편 앞길 막는 며느리라며 불호령을 칩니다.
심지어 자신의 딸이 아프다는 걸 모르고 있던 지영의 엄마에게 전화해 모든 사실을 얘기합니다.
여기서 두 엄마의 전화를 듣고 있으면 분통이 터지는데, 딸 가진 부모가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시어머니는 따져 묻고 지영을 그 흔한 우리 아가, 부르지 않고 사부인 딸이라고까지 지칭합니다.
아무튼 그 소식을 들은 친정엄마는 부랴부랴 지영을 찾아가 아이를 대신 봐주겠다고 얘기합니다.
그 순간 외할머니로 빙의된 지영.
“꽃다운 나이에 오빠들 뒷바라지한다고 청계천에서 미싱 돌리고 월급 받아올 때마다 엄마는 가슴 찢어졌다.”
자신의 엄마처럼 말하는 지영을 보자 억장이 무너지는 지영 엄마.
누군가의 엄마와 엄마에게 보내는 위로 같은 메시지였습니다.
엄마에서 딸로 이어지는 시대적 상처를 서로 공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생각에 잠긴 지영 엄마에게 참을 수 없는 일이 또 벌어집니다.
바로 지영의 아빠가 아들을 위한 보약만 지어왔기 때문입니다.
아들만 챙기고 왜 딸은 무시하냐고 울부짖게 되고, 이제 가족들까지 지영의 병든 마음을 알아버립니다.
지영은 대현의 동영상을 보고 자신의 문제를 알게 되고 그토록 바라던 구직을 포기하고 치료하기로 결심합니다.
“무서워요.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또 어떤 때는 어딘가에 갇혀있는 것 같아요.”
지영은 고백하게 되고 별 이유 없이 손가락질당해야 했던 과거들과 작별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지영이 주문한 커피를 받아 들다 아이 때문에 손이 미끄러지고 바닥에 다 쏟아버립니다.
그걸 본 뒷사람이 다 들리게 맘충이라며 지영을 욕하게 됩니다.
더 이상 고개 숙이지 않겠다 생각한 지영은 다가가 따져 묻습니다.
왜 하나도 모르는 나라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냐고 말입니다.
지영은 마침내 자기가 꿈꿔왔던 글을 쓰기 시작하고, 문학잡지에까지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크게 달라진 것 없는 일상 속에서의 작은 변화 때문에 지영은 마침내 미소 지으며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2. 감상 포인트
너무 현실적이라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입니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지영’이라면 한 번쯤 당해봤던 이유 없는 비난.
아이 키우는 같은 입장에서 공감이 많이 됐습니다.
때론 행복할 때도 있다고 고백하는 지영의 말처럼 지영과의 ‘조리원 동기’가 함께 나오는 장면들에선 아이 엄마라면 공감할 수 있는 웃음 포인트도 있었습니다.
연극영화과를 나온 엄마가 자기의 능력은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줄 때나 쓴다는 둥 명문대 나온 엄마는 굳이 왜 그렇게까지 배우려고 애썼냐며 서로 한탄하는 장면에선 육아과정에서 자신을 지우고 살아가는 많은 엄마들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것 같은 생각이라 웃픈 부분이었습니다.
원작 소설은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밀리언셀러와 동시에 전 세계 20개국으로 팔려가 번역됐고, 일본과 중국 등지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뜨거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던 페미니즘 관련 내용 때문에 많이들 알고 있겠지만, 사실 누구나 겪을 법한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로 글로벌한 관심을 끌어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원작과 다른 점은 책에선 남편도 함께 지영을 이해 못 하고 갈등하는 사이로 나오지만, 영화에선 그저 성실하기 짝이 없는 좋은 남편으로 나옵니다.
이렇게 바꾸면서 가정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로 시선을 돌릴 수 있게 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구시대적인 시대를 살고 있는 두 모녀의 호흡도 감동적이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부모님의 이야기는 5060 세대에는 허다한 경우였습니다.
하지만 그게 마음의 병이 깊어지는 딸과 그 딸에게 또 희생하려는 엄마의 모습에서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자신의 아픔을 인정하고 주변 사람에게 위로받으며 성장한 지영의 결말은 많은 누군가의 엄마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기에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3. 총평
변화하는 시대에서도 유독 변치 않는 편견들을 짊어진 채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
단지 여자 혹은 엄마라는 입장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 사회가 가진 한계에 주목한다면 남성도 열린 마음으로 영화를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보고 "여자만 힘드냐, 남자는 저 시간에 등골 빠지게 돈 벌어다 주는데"라고 생각한다면 서로의 상처만 긁어내는 꼴이지 않나 싶습니다.
저런 면도 있구나, 자신이 몰랐던 가까운 사람의 상처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 생명을 키워내는 분명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지만,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은 되지 못하는 엄마들에게 누군가가 내 현실을 알아줬다는 위로.
그리고 육아 분담의 사회적 시스템이 가진 한계를 우리 모두가 끌어안아 지영이 겪은 혐오를 다른 ‘누구 엄마’는 겪지 않도록 힘써야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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